택시에서

Posted in NOTES -------/- Diary | 2008/11/13 04:39

  선배의 집들이에서 술을 마시고 강남에서 택시를 탔다.
예상치 못 하게 많이 마신 술 때문에 속이 울렁거려 길가 잔디밭에 실컷 토를 하고 난 직후였다.
나의 집은 분당이기에 요금이 좀 많이 나올테지만 마땅히 집에 갈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첫번째 택시를 탔지만 그는 분당이 멀다면서 운행을 거부하였다.
나는 왜? 라고 물었고 그는 알아 들을 수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았다.
나는 운행 거부에 대해 싸우기가 귀찮아 아무 말 없이 내렸고 다음 택시를 기다렸다.
다음에 잡힌 택시를 모는 기사에게 분당가요? 라고 물어보니,
그는, 그럼요- 오늘 밤새 일해야 하는데, 어디든 다 가죠-하고 대답하였다.
내가 택시를 타고 주행을 시작하자마자, 그는
자신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를 역설하였다.
자신이 나의 나이일 때 지냈던 나날들과 지금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를 설명해주었다.
분당까지 가는 동안 거쳐 가야 하는, 산을 뚫어서 지은 그럴듯한 터널들에 대해서
자신이 어렸을 때에는 이런 기술은 상상조차 못 할 것들이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어렸을 때 먹었던 토끼 고기에 대해서 꿈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우리는 고기같은 걸 먹으려고 산에 올라 토끼를 잡고는 했어요" 라고 말하였다.
토끼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는 나는 그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았고
그는 닭과 비슷한데 좀 하얗다고 말하였지만, 나는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단지, 가죽이 벗겨진 귀가 엄청 긴 토끼의 모습을 머릿 속에 떠올리니 다시 속이 울렁거렸고,
내가 불과 몇 시간 전에 구워 먹은 예쁘게 썰린 소고기의 원래 모습을 떠올리니 또 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대화가 필요했던 것인지, 길고 긴 밤이 무료했던 것이지,
몇 번은 되풀이했을 것 같은 길고 긴 이야기를 줄곧 늘어 놓던 그는,
나의 집까지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놓쳐버려서 멀리 돌아가야 할 입장이 되어버렸다.
나는, 괜찮아요. 어치피 거기서 거긴데요- 라고 말하였다.  
그는, 자신이 토끼 고기를 먹던 시절 -그마저도 어떤 고기든 그것을 먹을 수 있었던
날은 정말로 운수가 좋았던 날이었다고 말하였다- 에 대한 무한한 향수를 늘어놓다가,
불현듯, 이전에는 분당까지 가는 택시 요금이 얼마가 나왔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이 새끼가 바가지를 씌울려고 작정을 하는구나,
내가 말하는 금액에 맞추어서 경기도로 가는 추가 요금을 받으려고 하는구나,
택시 요금이 오르면서 추가 요금이 없어진 지가 언제인데'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그냥 그 때 그 때 다르지요, 미터기에서 나오는 대로 냈어요 (씨발놈아)" 라고 대답하였다.
그 후 한참동안 말이 없던 그는 조용하게
"그 당시는 정말 힘들었어요. 정말." 이라는 말을 하였고,
잠시 후 나의 집 앞에 도착하였다.
나는 택시 요금을 결제하기 위하여 카드를 내밀었고
그는 카드를 받아 요금을 결제하였다.
미터기에 나온 금액대로 요금을 결제한 후에
그는 나에게 현금 삼천원을 건네면서,
"제가 좀 돌아온 것 같으니까 이거 받으세요" 라고 말하였다.
그가 나에게 분당까지 가는 택시요금을 이전에는 얼마냐 냈냐고 물어보았던 것은,
자신이 길을 잘 몰라서 헤맨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보통 나오는 요금 만큼을 제외하고는
그 만큼의 금액을 돌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그 순간이었다.
나는 멍청이같은 웃음을 지으며 그것을 받지 않겠다고 돌려주려 했지만,
그는 자신이 길을 몰라서 돌아왔기 때문에 그 만큼은 자기가 받을 수 없다,
내가 만약 그렇게 돈을 돌려주고 차에서 내리면 자신이 차 밖으로 나와서
나를 쫓아와서 꼭 삼천원을 주고 갈꺼라고 말했다.
나는 멍청이같은 표정으로 그 돈 삼천원을 손에 쥔 채 택시 밖으로 나오면서
멍청이같은 말투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문을 닫았다.
택시는 황망히 그 자리를 떠났고 나는 삼천원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면서 집으로 걸어갔다.
입에서 나는 역겹고 역겨운 토 냄새를 맡으며 나는,
택시 기사가 지새워야 하는 오늘 밤을 생각했고, 내가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나는 부끄럽고 부끄럽고 부끄러워 아주 잠깐 멍청이같은 눈물을 흘렸다.









2008/11/13 04:39 2008/11/13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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