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있는 친구에게 소포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갔다.
월요일 오후 우체국은, 저마다 어딘가로 무언가를 보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식에게 먹을 것을
보내려는 어머니, 고객에게 물건을 보내려는 아저씨,
나처럼 친구에게 선물을 보내려는 남자가 보였다.
어느 가수에게 선물을 보내려는 중학생 소녀 팬도 보였다.
저마다 목적은 다르겠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행여나
박스 뚜껑이 열리지는 않을까, 파손되지는 않을까,
자신이 안심될 때까지 박스에 투명 포장 테이프를
몇 번이고 덕지덕지 붙이는 것이었다. 박스 전체를
모두 다 테이프로 감아 버리는 아저씨도 있었다.
분명 모든 게 다 소중한 물건들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정성껏 무언가를 보낸다는 것은,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이든 상대방을 위해서이든
서로를 이어주고 채워주는 소중한 경험일 것이다.
문득,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친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헤어진 여자 친구의 물건들을
돌려주기 위해 우체국에 갔다. 박스 안에 전 여자 친구의
물건들을 한가득 담고 테이프로 동여 맨 다음, 그녀의 주소를
적는데 손이 너무 떨려서 도저히 글씨를 못 쓰겠더라고 했다.
갑자기 손에 힘이 하나도 없이 빠져서, 볼펜을 제대로 쥐지도
못 하겠더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우체국 구석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주먹으로 볼펜을 쥐고 두 손을 꽉 잡은 채로 겨우
주소를 적었다고 했다. 식은 땀이 났고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몇 줄 되지도 않는 주소를 적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그리고 한동안 그 박스를 쳐다보면서,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다고 했다.
이 모든 물건들을 -사실 그리 대단한 물건들도 아니었지만-
보내버리고 나면, 이제 정말로 그녀와 자신이 함께 했던
시간들이, 어떤 선을 넘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그
어느 곳으로, 영원히 떠나 버릴 것 같더라고 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삶을 이루었던 어느 한 동안의 시간들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것이며, 모든 의미있는 것들이
무의미해져 버리는 것이며, 자기 자신조차도 사라져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같더라고 했다.
상실감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찾아온다.
친구가 박스에 넣은 물건들은 그냥 단순한 사물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지난 시간의 어느 부분, 어느 공간, 어느 소리,
어느 냄새, 어느 분위기와 현재의 친구와의 매개체이다.
아주 사소한 -내가 나중에 친구에게 그 박스 안에 무엇을
넣었냐고 물어봤을 때, 너무나 별 것 아닌 것들이라 심지어
친구가 기억조차 못 하는 것들도 많았다. 그냥 뭐 물건들이지.
그냥 걔 물건들. 이라고 말했다.-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문득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들인지 깨닫게 될 때,
그 사소한 것들이 있었던 그 때가 얼마나 소중했고
더이상은 그와 똑같은 순간이 나에게 없을 거라는 걸 알게 될 때,
상실감은 전혀 사소하지 않은 무게로 우리를 엄습한다.
그것은 가끔은 굉장히 무서울 정도인데, 그 조그마한 과거의
물건들이 우리에게 남은 앞으로의 시간들 조차도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지경에 이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애써 그것이 사실 별 것 아니라고,
의미를 축소시키고 무시하면서 자신을 세뇌한다.
혹은 아예 그것에 대한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집중할 수 있는,
대체할 다른 무언가를 찾는다. 혹은 그냥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어쨌든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실감은 결국 치유가 된다.
혹은 치유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실감의 정도는
그것을 몇 번 겪어 가면서 조금씩 약해진다.
나는 그것이 우리의 순수함의 정도가 약해지는 것과
비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간들을 박스에 모두 담아 헤어진 연인에게
보내버리고 정리하고 잊어버리고 싶었던 친구는,
조금이나마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증명해주던 아주 사소한
물건들을 저 까만 우주 너머 어딘가로 보내버리면서,
깊은 상실감으로 온 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 앉아서
구불구불한 글씨를 힘겹게 쓸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의 친구에게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정성껏
보낸다는 것이, 상실이자 끝이었다.
지금 친구는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
친구를 아주 좋아하는 예쁘고 착한 여자이다.
그 전 여자보다 훨씬 괜찮아 보인다. 웃는 표정이 순하고,
모나지 않은 부드러운 심성을 지녔다. 굉장히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나름의 유머도 조금씩 보인다.
친구가 우체국에서 박스에 담아 보냈던 물건들은,
다른 여자의 물건들로 모양이 바뀐 채 하나 둘씩 반송되고 있다.
잃어버리고 사라져버린 것 같았던 시간들은,
비슷한 형태이지만 다른 느낌들로 다시 찾아오고 있다.
그렇게 상실감은 어느 정도 치유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친구는 나와 있을 때마다 가끔,
헤어진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한다.
아직도 문득 생각이 날 때면 그 때 차마 박스에
넣어 보내지 못 했던 사진을 꺼내서 보곤 한단다.
언젠가 길에서 우연히라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는 병신같다고 놀리면서, 나같은 경우는 가끔 그녀의 살결
-특히 허리와 엉덩이의 촉감- 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그냥 그녀의 찡그린 표정과 신음 소리를 생각하며
자위를 한 번 하고 나면 잊어버린다고 말한다.
물론 -그럴 때도 있고, 효과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농담이다.
난 문득문득 그녀 생각이 간절히 날 때면, 아무 것도 하지
못 하고 마음이 진정 될 때까지 멍하게 가만히 앉아 있는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남자도 옆에 없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내가 알고 있는 공간에서,
내가 알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최대한 상상한다.
내가 기억하는 그 시간들이 전혀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그 때가 전혀 변하지 않은 것처럼.
친구의 그 여자는?
친구와 헤어진 그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단다.
친구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단다.
친구는 그 사실을 그녀의 블로그를 스토킹해서 알아 내었다.
5년을 넘게 만난 내 친구와 헤어지고 일년도 안 되어서
다른 누군가와 결혼을 하였고, 지금은 아이가 있는 것 같단다.
나는 여자가 어느 정도 잔인한 구석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친구도 그렇게 말은 하는데, 진심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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