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와 서 있는데 한 할머니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전형적인 맛을 내는 인스턴트 우동을 먹고 나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이다.
볼품없는 맛이긴 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어디에서 먹든 비슷한 맛을 내는
인스턴트 우동 맛이 신기했을 뿐이다. 적당히 이 정도 맛을 내는 방법이 적혀
있는 메뉴얼이라도 있는걸까. 정말 볼품없는 맛이지만 이 맛이 좋다. 적당히
싼 값에 딱 그 값만큼의 맛.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이 할매가 늙어서 어느 입구로 들어가야할 지를
모르겠어요. 라며 할머니는 티켓 한 장을 보여준다. 출발하기까지는 30분
정도가 남아 있다. 승차장 입구는 우리가 서 있는 곳 바로 앞인데,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바로 앞에 있는 입구를 잊어버린 듯 했다. 그 정도 연세의
할머니이다. 승차장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간다. 여기서 타시면 되는데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기차는 없네요 할머니. 아유 고마워요. 인상도 좋고.
할머니도 인상이 너무 좋으시네요. 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둔다. 말해봐야
제대로 알아 듣지도 못할 것 같다. 할머니 인상이 좋긴 하다. 사악한
노인네는 아닌 듯 하다. 사악한 노인네는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추하다.
할머니는 느릿느릿 승차장 앞 벤치로 걸어가 앉는다. 의자에 앉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느다란 두 다리가 후들거린다. 저 다리로 화장실 의자에
느릿느릿 앉아 오줌을 눌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서글퍼진다.
나는 돌아서서 다시 기차역 안으로 들어온다. 할머니의 행선지가 어디에
있는 건지 궁금해서, 역에 걸려있는 전국 지도를 쳐다 본다. 내가 가려고 하는
곳과 가까운 곳이다. 남해의 어떤 도시. 왠지 그 할머니가 가깝게 느껴진다.
이유는 나와, 같은 날 비슷한 곳으로 떠나려하기 때문이다. 조금 다르긴 하다.
나는 떠나는 것이고 할머니는 돌아가는 것일테니까. 아니다. 어쩌면 할머니도
여행을 가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의 서울 생활이 지겨워 무작정
이 땅의 남쪽 끝으로 떠나보고 싶었을 수도 있으니까. 이제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또 다른 이유는 나의 외할머니가 생각나서이다. 외할머니는 지금 아프시다.
위암. 의사는 노인이 항암치료를 하면 정말 견디기 힘들 거라고 했다. 어차피
세포 활동이 더 이상 빨리 진행되지는 않으니 암세포도 빨리 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냥 두면 5년. 5년은 적당히 살다가 갈 수 있을거라 말했고,
가족들은 항암치료에서 오는 고통보다는 그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치료를 포기했다. 6개월. 암선고를 받고 6개월만에 할머니는 무너졌다.
어느 날, 외삼촌에게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원을 했으니 와 보라
하시면서, 할머니를 보고 놀라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병든 노인네인데 뭘,
이라며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의 흔들리는 눈빛과 담담한
말투 중 어느게 진심일까 생각했다.
할머니는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방학이면 시골에 내려가 할머니와
지냈던 날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할머니와 함께 시골 강에 나가 나와 동생이
수영을 하고 있으면, 할머니는 강변에서 돌 아래 붙어 있는 올갱이를 땄다. 시골 생활이
무료해질 때면 함께 동네 시장에 놀러가 잘린 달구발과 옥수수를 샀고, 때때로 어디선가
통통한 꽁치를 몇 손 사 들고 오셨다. 올갱이는 시원한 올갱이국으로, 달구발은 뼈가
모두 발려 뼈 없는 닭발 요리로 상 위에 올랐다. 꽁치는 연탄불 위에서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고소하게 익었고, 푹 삶은 옥수수는 할머니 손끝에서 한알 한알 빠져
내 입으로 들어왔다. 강한 햇살 아래에서 까맣게 타 살갗이 벗겨진 어깨는 너무나
따가웠지만, 할머니의 부채질 앞에서 잠드는데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동네 할머니들의 점당 십원짜리 화투판 앞에 조금만 앉아 있으면, 어느새 오락실에
갈 수 있는 돈이 몇 푼 손에 들어 왔다. 서울 집으로 돌아갈 때면 할머니가 슬쩍
다가와 엄마 몰래 쥐어주던 용돈은, 헤어질 때면 늘 할머니 앞에서 머뭇거렸던 이유였다.
할머니는 까맣고 건강한 살집을 가지고 계셨고 은니를 드러내며 밝게 웃으셨다. 그는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긴 방학의 시작과 끝을 알려준 영원할 것 같던 자연이었다.
요양원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처참했다. 우리 가족은 처음에 할머니를
알아보지도 못 했다. 여러 개의 침대 위에 누워있는 -그냥 놓여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작은 형체들을 두리번거리다가 희미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려고
노력하는 할머니를 찾았다. 그것은 당황 그 자체였는데, 어머니는 이미 흔들렸던
눈빛이 진심이었다는 걸 쏟아지는 눈물로 보여주고 있었고, 우리 가족 모두는 그
생경한 풍경에 알 수 없는 오싹함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난 먼저 한 인간의 육체가
이렇게 급격하게 쇠퇴할 수 있다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내 기억 속의
할머니의 모습 중 그 어느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정신이 멍했다. 그 곳에는
어떤 웃음도 어떤 온기도 어떤 기다림과 어떤 시골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그 곳에는
단지 바싹 건조시킨 까만 버섯 쪼가리같은 한 형체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우리 가족을 알아보고 있기는 했지만, 흐릿한 촛점은 저 멀리 어딘가 과거인지
미래인지 모를 아득한 시간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칼칼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할머니의 모습은, 녹이 잔뜩 슨 고물 기계, 다리가 부러지고 눈이
멀은 비에 젖은 유기견, 그 자체가 커다란 암세포.
휠체어에 할머니를 태운 우리는 밖으로 나와 뜨거운 햇살을 피해서, 허접하게
꾸며 놓은 요양원 앞 정자 아래로 들어갔다. 딱히 무얼 할 것도 없었지만, 일단
그곳을 빠져나왔다.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하얗고 딱딱한 요양원. 할머니는
옆에 앉아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에게 문득문득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암선고를 받고 그냥 수술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수술을 시키지 않은 자식들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시골집 마당에 무화과가 아주 달게 익었을텐데 하는, 시골
집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걷지 못하니 답답하다는, 잠을 한 숨도 자지 못 해
괴롭다는, 밥을 한 숟갈도 먹지 못 해 힘이 든다는, 이 전에 누리던 일상에 대한 깊은
미련이 있었다. 그리고,
집 냉장고에 장조림이랑 김치랑 해 놓았으니, 서울 올라갈 때 가지고 가서 묵으라.
는 그의 말.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간의 입에서 새어 나온 장조림과 김치라는
생기넘치는 음식의 느낌이 이상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그 음식의 맛과 냄새의
감각이 아련했다. 그 묘한 대비가 낯설었다. 어떤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이 조그만 형체는, 이쑤시개로 올갱이를 하나하나 빼내고 손끝으로 닭발의
뼈를 하나하나 바르고, 투박하고 까만 손끝으로 직접 옥수수알을 모두 발라서 자손의
입으로 넣어주면서 웃던 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가지만 너는 살아라.
그는 남은 인간들의 삶을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당신처럼 늙고 병들고 쪼그라들,
자신 뒤에 남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다시는 자식에게 해주지 못
할 장조림과 김치를 생각하고 있었다.
할머니 할 말이 있어요. 어릴적 할머니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 저금통에서 돈을
훔쳤어요. 그 500원짜리만 모아 두었던, 할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 놓여있던 저금통
있자나요. 그걸 조금씩 빼서 오락실에 가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었어요. 좀 무섭고
죄송하기는 했지만, 500원짜리 몇 개면 그 날 하루는 즐겁게 놀 수 있었거든요.
저금통 뚜껑을 딸 때마다 영정사진 속 할아버지의 매서운 눈이 무서워 눈을
돌리고는 했지요.
생각해보면, 할머니가 모르셨을 리가 없다.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 즈음에는 묵직했던
저금통이 가벼워져 있었을텐데. 다음 방학이면 다시 묵직하게 돌아와 있던 저금통이
난 얼마나 반가웠던지. 멍청한 어린 녀석. 사실 부모들은 대부분을 알고 있다.
그들은 모른 척 넘어갈 뿐이다. 그들의 부모가 그랬으니까. 그들의 자식들도 그럴테니까.
나에게 길을 물었던 할매는 이미 떠났는지 벤치에 없다.
나는 그의 여행의 끝이 어디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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