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앞에서

Posted in NOTES -------/- Diary | 2009/11/20 22:01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향년 79세.
송분이. 어릴 적 너무나 얼굴이 고와 이쁜이, 이쁜이라고 불리다가
'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나에게는 언제나 그저 '할머니'로 충분했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지켜본 건 실로 거의 처음이었다.
두 할아버지를 보내긴 하였으나 그 땐 너무 어렸다.
서럽게 울긴 하였으나 그건 그저 더이상 할아버지의 팔에 매달릴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엄마의 울음을 보고 덩달아 슬퍼 울었던 것 뿐이었으리라.

막상 장례를 치르면서는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목놓아 소리높여 이 세상 끝까지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도록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가시는 분을 위해 곡소리를 높여달라는 장례식장 직원의
말에는 웃음마저 날 지경이었다.
다만, 개띠는 하관과 초토를 보면 안된다하여 무덤 먼 발치로 쫓겨난 나는
달구질을 하는 사내들의 노래와 곡소리를 들으며 빨간 눈으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무엇이든 움직이는 것을 찾았다.

돌아가시기 몇일 전부터 그동안 못드시던 음식을 - 비록 쌀 조금으로 만든
멀건 죽이긴 했지만- 드시길래 다시 회복을 하시려나보다 라고 생각을 했었다.
주변의 어른들이 저승길 양식을 하는 것 같으니 이제 준비를 해야한다고
했지만 믿지 않았다.
늙은이들의 말도 안 되는 지혜는 영락없이 들어 맞았고,
조금의 양식을 채우신 할머니는 큰 숨을 두 번 내뱉으신 후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이왕에 저승길 양식이라면 고기도 좀 드시고 과일도 좀 드시고 
생선에 좋아하시던 겨자도 두둑히 찍어 드시고 출발하시지.
그 멀건 흰 죽 조금으로 그 먼 길을 무사히 가실 수 있을지.

누구의 말대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는 되었지만,
더이상 자식들을 바라보던 그 정겨운 표정을 못 보고 내 이름을 부르던
그 투박한 목소리를 못 듣는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가.
병든 늙은이의 죽음에서 언젠가 불현듯 다가올 남은 이들과의 이별을 미리
생각하고 입술을 물었던 것은 너무나 과장된 자학이었을까.

이상 기온으로 유난히도 추웠던 초겨울.
오랜만에 찾은 시골은 서러울만큼 조용하고 무료한 풍경이었고,
평생을 자식만으로 살아온 이쁜이는
잊고 있던 무언가가 문득 생각난듯이 그렇게 불현듯
이 추운 세상을 조용히 떠났다.

2009/11/20 22:01 2009/11/20 22:01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