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에서

Posted in NOTES -------/- Notes | 2009/01/01 18:35
 
  영국에 있는 친구에게 소포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갔다.
월요일 오후 우체국은, 저마다 어딘가로 무언가를 보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식에게 먹을 것을
보내려는 어머니, 고객에게 물건을 보내려는 아저씨,
나처럼 친구에게 선물을 보내려는 남자가 보였다.
어느 가수에게 선물을 보내려는 중학생 소녀 팬도 보였다.
저마다 목적은 다르겠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행여나
박스 뚜껑이 열리지는 않을까, 파손되지는 않을까,
자신이 안심될 때까지 박스에 투명 포장 테이프를
몇 번이고 덕지덕지 붙이는 것이었다. 박스 전체를
모두 다 테이프로 감아 버리는 아저씨도 있었다.
분명 모든 게 다 소중한 물건들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정성껏 무언가를 보낸다는 것은,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이든 상대방을 위해서이든
서로를 이어주고 채워주는 소중한 경험일 것이다.

  문득,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친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헤어진 여자 친구의 물건들을
돌려주기 위해 우체국에 갔다. 박스 안에 전 여자 친구의
물건들을 한가득 담고 테이프로 동여 맨 다음, 그녀의 주소를
적는데 손이 너무 떨려서 도저히 글씨를 못 쓰겠더라고 했다.
갑자기 손에 힘이 하나도 없이 빠져서, 볼펜을 제대로 쥐지도
못 하겠더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우체국 구석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주먹으로 볼펜을 쥐고 두 손을 꽉 잡은 채로 겨우
주소를 적었다고 했다. 식은 땀이 났고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몇 줄 되지도 않는 주소를 적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그리고 한동안 그 박스를 쳐다보면서,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다고 했다.
  이 모든 물건들을 -사실 그리 대단한 물건들도 아니었지만-
보내버리고 나면, 이제 정말로 그녀와 자신이 함께 했던
시간들이, 어떤 선을 넘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그
어느 곳으로, 영원히 떠나 버릴 것 같더라고 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삶을 이루었던 어느 한 동안의 시간들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것이며, 모든 의미있는 것들이
무의미해져 버리는 것이며, 자기 자신조차도 사라져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같더라고 했다.

  상실감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찾아온다.
친구가 박스에 넣은 물건들은 그냥 단순한 사물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지난 시간의 어느 부분, 어느 공간, 어느 소리,
어느 냄새, 어느 분위기와 현재의 친구와의 매개체이다.
아주 사소한 -내가 나중에 친구에게 그 박스 안에 무엇을
넣었냐고 물어봤을 때, 너무나 별 것 아닌 것들이라 심지어
친구가 기억조차 못 하는 것들도 많았다. 그냥 뭐 물건들이지.
그냥 걔 물건들. 이라고 말했다.-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문득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들인지 깨닫게 될 때,
그 사소한 것들이 있었던 그 때가 얼마나 소중했고
더이상은 그와 똑같은 순간이 나에게 없을 거라는 걸 알게 될 때,
상실감은 전혀 사소하지 않은 무게로 우리를 엄습한다.
그것은 가끔은 굉장히 무서울 정도인데, 그 조그마한 과거의
물건들이 우리에게 남은 앞으로의 시간들 조차도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지경에 이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애써 그것이 사실 별 것 아니라고,
의미를 축소시키고 무시하면서 자신을 세뇌한다.
혹은 아예 그것에 대한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집중할 수 있는,
대체할 다른 무언가를 찾는다. 혹은 그냥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어쨌든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실감은 결국 치유가 된다.
혹은 치유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실감의 정도는
그것을 몇 번 겪어 가면서 조금씩 약해진다.
나는 그것이 우리의 순수함의 정도가 약해지는 것과
비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간들을 박스에 모두 담아 헤어진 연인에게
보내버리고 정리하고 잊어버리고 싶었던 친구는,
조금이나마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증명해주던 아주 사소한
물건들을 저 까만 우주 너머 어딘가로 보내버리면서,
깊은 상실감으로 온 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 앉아서
구불구불한 글씨를 힘겹게 쓸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의 친구에게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정성껏
보낸다는 것이, 상실이자 끝이었다.

  지금 친구는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
친구를 아주 좋아하는 예쁘고 착한 여자이다.
그 전 여자보다 훨씬 괜찮아 보인다. 웃는 표정이 순하고,
모나지 않은 부드러운 심성을 지녔다. 굉장히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나름의 유머도 조금씩 보인다.
친구가 우체국에서 박스에 담아 보냈던 물건들은,
다른 여자의 물건들로 모양이 바뀐 채 하나 둘씩 반송되고 있다.
잃어버리고 사라져버린 것 같았던 시간들은,
비슷한 형태이지만 다른 느낌들로 다시 찾아오고 있다.
그렇게 상실감은 어느 정도 치유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친구는 나와 있을 때마다 가끔,
헤어진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한다.
아직도 문득 생각이 날 때면 그 때 차마 박스에
넣어 보내지 못 했던 사진을 꺼내서 보곤 한단다.
언젠가 길에서 우연히라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는 병신같다고 놀리면서, 나같은 경우는 가끔 그녀의 살결
-특히 허리와 엉덩이의 촉감- 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그냥 그녀의 찡그린 표정과 신음 소리를 생각하며
자위를 한 번 하고 나면 잊어버린다고 말한다.
물론 -그럴 때도 있고, 효과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농담이다.
난 문득문득 그녀 생각이 간절히 날 때면, 아무 것도 하지
못 하고 마음이 진정 될 때까지 멍하게 가만히 앉아 있는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남자도 옆에 없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내가 알고 있는 공간에서,
내가 알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최대한 상상한다.
내가 기억하는 그 시간들이 전혀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그 때가 전혀 변하지 않은 것처럼.

  친구의 그 여자는?
친구와 헤어진 그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단다.
친구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단다.
친구는 그 사실을 그녀의 블로그를 스토킹해서 알아 내었다.
5년을 넘게 만난 내 친구와 헤어지고 일년도 안 되어서
다른 누군가와 결혼을 하였고, 지금은 아이가 있는 것 같단다.
나는 여자가 어느 정도 잔인한 구석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친구도 그렇게 말은 하는데, 진심인지는 모르겠다.






2009/01/01 18:35 2009/01/01 18:35

사우나에서

Posted in NOTES -------/- Notes | 2008/12/27 01:35
 
  한밤 중. 동네의 조그만 사우나 안에 있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없다.
대부분은 피곤하거나 아무 생각이 없는 얼굴이다. 물론 나도 그럴테지만.
카운터에 앉아 음료수나 면도기, 때밀이 같은 것들을 파는 남자가 있다.
남자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저 자리에서
태어나서 저 곳에서 그대로 늙어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평상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남자, 발톱을 깍는 남자, 조용히 옷을 갈아입는 남자,
구석에 누워 잠을 자는 남자가 보인다. 특유의 사우나 냄새는 각자의
행위들을 하고 있는 벌거벗은 이들이, 암묵의 공감 같은 것을 갖게 해준다.
까만 먼지가 잔뜩 낀 선풍기가 딱딱 소리를 내며 연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다.

  탕 안으로 들어간다. 땀을 빼고 싶어 먼저 사우나에 들어간다. '보석 사우나'를
이용한다. 보석에서 나오는 게르마늄같은 것들이 여러모로 몸을 건강하게 해 준다는
설명이 붙어 있지만, 딱 봐도 절대 보석이 아닌 것 같은 허접한 장식으로 내부를
도배해 놓았다. 정체 모를 이 돌덩이들을 이렇게 뜨겁게 데우면 엄청난 양의 화학
호르몬이 방출되어 오히려 사람의 수명을 줄이는 게 아닐까, 싶지만 어쨌든 가만히
앉아 땀을 뺀다. 늦은 시각이라 탕 안에 사람이 많지 않다. 까부는 아이를 데리고
온 아빠도, 여러 명이 함께 와 미친듯이 떠들며 냉탕을 휘젓는 친구들도 없다. 그저
몇몇 사내들, 뱃살이 늘어진 몇몇 사내들이, 오래 전에 괘도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우주선 안을 부유하는 죽은 우주인들처럼 멍하게 앉아 있고, 누워 있다.
  아주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 열탕에 들어가려다가 멈칫한다. 더럽다.
누군가가 오줌을 싼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기는 싫지만, 분명 누군가 무언가를
싸긴 쌌다. 열탕을 포기하고 온탕으로 들어간다. 온탕 역시 더럽기는 마찬가지다.
무엇인지 모를 까만 조각들이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닌다. 물을 언제 갈았을까. 아마
오늘 새벽에 한 번 갈았을 것이고 이른 새벽이나 되어야 다시 새 물로 갈 것 같다.
난 정체 모를 사내들이 정체 모를 노폐물을 푹 우려낸 물이, 최고로 정체가 없어진
시각에 나의 나체를 깊이 담그고 있다.
  소리가 나갈 곳이 없는 목욕탕이 내는 특유의 몽롱한 룸 톤에 귀가 먹먹하다.
이따금 들리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정신을 집중한다. 아주 작은 그 소리는
커다란 목욕탕 전체를 흔든다. 답답하면서도 나른하고 찝찝하면서도 개운한
느낌이 온 몸을 핥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한 광경이다. 한 공간 안에 사람들이 모여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자지를 덜렁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광경은. 그 중에서도, 탕 안에 놓여있는
의자에 벌러덩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사내를 보았을 때가 가장 이상하다. 나름대로
가린다고 덮은 수건은 이미 벗겨져서 바닥에 떨어져 있다. 피하려고 해도 자기도 모르게
볼 수 밖에 없는 풍경들이 있다. 바로 이럴 때다. 기진맥진한 듯이 축 처져서 주인의
몸에 기대어 누워 있는 자지는 자기 주인보다도 더 지쳐보인다. 사실 우스운 광경이다.
그 남자가 밖에 나가 옷을 잘 차려입고, 예의를 갖추어 상대방과 악수를 하는 광경을
상상해보면 더욱 우습다.

  군대 훈련소에서의 여름이 생각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던 강원도 산골짜기의 훈련소는
그야말로 산과 계곡의 한 가운데에 고립되어 있었다. 한여름이었지만 밤에는 깔깔이를
껴 입어야할 정도로 추웠다. 물론 낮에는 보석 사우나에 앉아 있는 것처럼 더웠다.
  하루에 구보를 두 번씩 했는데,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과 일과를 끝내는 저녁이었고,
한여름이었기에 저녁 구보는 언제나 웃통을 벗고 하는 알몸 구보였다. 한참을 소리를
지르면서 뛰고 나면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불쌍하게도 담배 한 대 피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러나 분명 건강해지고 있었다. 오후 구보가 끝나면 교관들은 300명쯤
되었던 훈련병들을 훈련소 옆의 계곡으로 데리고 갔다. 우리를 씻기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수돗물을 아끼면서 그 많은 냄새나는 나체들을 씻길 수 있는, 한 여름이니
가능한 대책이었을테지만-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분명 좋은 방법이었다.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어찌 보면 예술적이기까지 했다. 300개가 넘는 벌거벗은
몸뚱이가 한 공간 안에서 첨벙이며 초저녁의 지는 햇살에 반짝이던 광경. 서로에 대한
어색함과 막연한 시간에 대한 두려움은 그 기이한 광경 안에서 철철 흘려 내려가는
계곡물과 함께 떠내려갔다. 계곡은 시원했고 건강했다. 난 찬란한 노란 햇살과 싱싱한
초록 풀과 투명한 파란 물이 넘실대던 그 거대한 목욕탕 안에서 누가 누구인지 구별되지
않는 노랗고 까만 몸뚱이들을, 어린 아이들처럼 물장구를 치고 첨벙대는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조금씩 딱딱해지는 근육을 문지르면서, 젊음을, 어떤 희망과 기대,
두려움과 허무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탕에서 나와 대충 비누로 몸을 씻는다. 어느 사우나에서나 볼 수 있는 노란 참외처럼
생긴 비누에 끼어 있는 털 몇 올을 걸러내고,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고 몸을 닦는다.
수건 두장으로 몸을 닦고 탕을 나온다. 그다지 개운하지가 않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처음 들어왔을 때 보다 사람이 더 없다. 아까 TV를 보던 남자는 아직까지
같은 자세로 그것을 보고 있고, 카운터의 남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TV에서는 어느 드라마의 재방송을 하고 있는데, 남자가 특별히 드라마의 내용을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벽을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것 같이 단조로운 눈빛이다.
TV 속의 남자는 "이번 카지노 계약만 성사되면 끝나는거야. 그 전에 우선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어" 같은 대사를 하고 있다. 또 카지노 이야기인가. 다음 씬의 여배우는
라스베가스의 어느 고급 바에 앉아 매우 청순하면서도 가련한 표정을 지으려 애를
쓰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감독의 컷 사인이 언제 나올지만을 신경쓰고 있는 눈빛이다.
그녀의 친구는 마침 싸가지가 없는 부잣집 막내딸 같은 역할인데 아마도 여주인공의
출생의 비밀 같은 것을 알고 그녀를 괴롭히는 듯 하다. 마침 그 부잣집 막내딸의 아빠는
불륜 관계의 여자때문에 골치를 썪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가장 슬픈 건 여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아 여자가 불치병에 걸린건가. 모르겠다.
그냥 늘 그렇듯, 그런 것들이 적당히 섞여서 나온다. 그래도 여주인공이 상당히 예쁘긴 하다.
너무 진한 화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 안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든 화장을 하고 있다.
잠을 자고 부스스 일어나는 연기를 하는 어떤 배우는 아주 긴 속눈썹을 붙이고 있다.
아마도 잠이 들 때 속눈썹을 빼면 죽게 되는 불치병에 걸렸나보다.

  남자는 채널을 돌린다. 심각한 표정으로 슬픈 사랑 노래를 부르면서 심하게 몸을 흔드는
댄스 가수가 보인다. 그 잔뜩 찡그린 얼굴 표정과 매우 역동적인 몸동작의 괴리가 재미있다.
그런 비슷 비슷한 댄스 그룹 몇개가 지나간다. 99900원짜리 여름 특선 블라우스 삼종
셋트를 입고 포즈를 잡는 모델들이 보인다. 난 그 중 한 모델이 예쁘다고 생각한다. 목에
핏줄이 선 채 어느 생명 보험의 혜택에 대해 설명하는 여자가 보인다. 괜찮은 인상이긴
하지만 그녀가 입은 촌스러운 블라우스가 눈에 거슬린다. 방금 전 지나간 99900원짜리
여름 특선 블라우스 삼종 셋트 중 하나일 것 같다. 그녀 옆에서는 어느 남자와 여자가
환호성을 지르면서, 그렇습니다~, 어머 어서 가입해야겠어요~ 같은 대사를 날리고 있다.
밤의 한 가운데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비하여 보험에 가입하라고 목청껏 외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우울해진다. 누군가는 이 밤에 저 쇼를 보면서, 자신이 죽거나
암에 걸렸을 때 돈을 받기 위해, 전화기를 들고 저 보험에 가입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니 더 우울해진다.
  동료의 어깨를 밟고 힘차게 뛰어올라 반대 당 남자의 멱살을 잡으려는 어느 국회의원이
지나간다. 어느 여중생이 부모없이 두 동생을 기르면서 힘들게 학교에 다니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다고 말하는 나레이터의 목소리가 지나가고, 샌프란시스코의 게이 축제가
지나가고, 요즘 유행하는 코미디 프로의 재방송 -잠시 그걸 보다가, 채널을 돌리던 남자와
나는 동시에 어느 부분에서 짧고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이 지나가고, 어느 연예인의
호화로운 신혼집이 지나가고, 북극의 녹아내리는 빙하가 지나가고, 미사일 폭격으로
폐허가 된 중동의 어느 도시에 널려 있는 시체들이 지나가고, 손에 2000원을 쥐고
죽은 채 발견된 어느 노숙자가 지나가고, 가장 멋진 골장면 베스트 파이브가 지나가고
신도들의 성원으로 해외에도 커다란 전당을 지었다며 더 많은 성금을 내주길 원하는
어느 목사님이 지나간다. '유러피안 룩', '아메리칸 스타일', '니뽄삘'이라는 자막이 깔린
우리 나라의 패션 관련 방송이 보여, 잠시 내가 사는 여기가 어딘지 헷갈릴 때 쯤,
조용하게 무심히 채널을 돌리던 남자가 TV를 끈다.
  남자는 주위를 한 번 휘 둘러본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5만년쯤 자다 일어난 원시인이,
뭐 더 볼래? 라고 묻는 듯한 표정이다. 난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시선을 돌린다. 남자는
벌러덩 눕더니 이내 코를 곤다. 나는 잠시 코를 고는 남자를 쳐다보다가 까만 TV 화면을
바라본다. 까만 TV 화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아직 옷도 입고 있지 않고 있었다.
개그 프로그램의 바보나 라스베가스의 바에 앉아 있던 여주인공보다도 멍청한 모습이다.
심드렁하게 누워 코를 골고 있는 원시인보다도 촌스러운 표정이다.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방금 눈 앞에 지나간 것들을 막연하게 떠올려 본다. 그것들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생각해 본다.
지난 시간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정신이 아찔하다. 탕에서 땀을 너무 많이 뺐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선풍기의 미지근한
바람이 얼굴에 와 닿는다. 남자의 코고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2008/12/27 01:35 2008/12/27 01:35

기차역에서

Posted in NOTES -------/- Notes | 2008/12/01 01:22

  기차역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와 서 있는데 한 할머니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전형적인 맛을 내는 인스턴트 우동을 먹고 나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이다.
볼품없는 맛이긴 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어디에서 먹든 비슷한 맛을 내는
인스턴트 우동 맛이 신기했을 뿐이다. 적당히 이 정도 맛을 내는 방법이 적혀
있는 메뉴얼이라도 있는걸까. 정말 볼품없는 맛이지만 이 맛이 좋다. 적당히
싼 값에 딱 그 값만큼의 맛.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이 할매가 늙어서 어느 입구로 들어가야할 지를
모르겠어요. 라며 할머니는 티켓 한 장을 보여준다. 출발하기까지는 30분
정도가 남아 있다. 승차장 입구는 우리가 서 있는 곳 바로 앞인데,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바로 앞에 있는 입구를 잊어버린 듯 했다. 그 정도 연세의
할머니이다. 승차장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간다. 여기서 타시면 되는데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기차는 없네요 할머니. 아유 고마워요. 인상도 좋고.
할머니도 인상이 너무 좋으시네요. 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둔다. 말해봐야
제대로 알아 듣지도 못할 것 같다. 할머니 인상이 좋긴 하다. 사악한
노인네는
아닌 듯 하다. 사악한 노인네는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추하다.

  할머니는 느릿느릿 승차장 앞 벤치로 걸어가 앉는다. 의자에 앉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느다란 두 다리가 후들거린다. 저 다리로 화장실 의자에
느릿느릿 앉아 오줌을 눌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서글퍼진다.
  나는 돌아서서 다시 기차역 안으로 들어온다. 할머니의 행선지가 어디에
있는 건지 궁금해서, 역에 걸려있는 전국 지도를 쳐다 본다. 내가 가려고 하는
곳과 가까운 곳이다. 남해의 어떤 도시. 왠지 그 할머니가 가깝게 느껴진다.
이유는 나와, 같은 날 비슷한 곳으로 떠나려하기 때문이다. 조금 다르긴 하다.
나는 떠나는 것이고 할머니는 돌아가는 것일테니까. 아니다. 어쩌면 할머니도
여행을 가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의 서울 생활이 지겨워 무작정
이 땅의 남쪽 끝으로 떠나보고 싶었을 수도 있으니까. 이제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또 다른 이유는 나의 외할머니가 생각나서이다. 외할머니는 지금 아프시다.
위암. 의사는 노인이 항암치료를 하면 정말 견디기 힘들 거라고 했다. 어차피
세포 활동이 더 이상 빨리 진행되지는 않으니 암세포도 빨리 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냥 두면 5년. 5년은 적당히 살다가 갈 수 있을거라 말했고,
가족들은 항암치료에서 오는 고통보다는 그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치료를 포기했다. 6개월. 암선고를 받고 6개월만에 할머니는 무너졌다.
어느 날, 외삼촌에게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원을 했으니 와 보라
하시면서, 할머니를 보고 놀라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병든 노인네인데 뭘,
이라며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의 흔들리는 눈빛과 담담한
말투 중 어느게 진심일까 생각했다.
 
  할머니는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방학이면 시골에 내려가 할머니와
지냈던 날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할머니와 함께 시골 강에 나가 나와 동생이
수영을 하고 있으면, 할머니는 강변에서 돌 아래 붙어 있는 올갱이를 땄다.
시골 생활이
무료해질 때면 함께 동네 시장에 놀러가 잘린 달구발과 옥수수를 샀고, 때때로 어디선가
통통한 꽁치를 몇 손 사 들고 오셨다. 올갱이는 시원한 올갱이국으로,
달구발은 뼈가
모두 발려 뼈 없는 닭발 요리로 상 위에 올랐다. 꽁치는 연탄불
위에서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고소하게 익었고, 푹 삶은 옥수수는 할머니
손끝에서 한알 한알 빠져
내 입으로 들어왔다. 강한 햇살 아래에서 까맣게 타
살갗이 벗겨진 어깨는 너무나
따가웠지만, 할머니의 부채질 앞에서 잠드는데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동네 할머니들의 점당 십원짜리 화투판 앞에 조금만
앉아 있으면, 어느새 오락실에
갈 수 있는 돈이 몇 푼 손에 들어 왔다. 서울
집으로 돌아갈 때면 할머니가 슬쩍
다가와 엄마 몰래 쥐어주던 용돈은, 헤어질
때면 늘 할머니 앞에서 머뭇거렸던 이유였다.
할머니는 까맣고 건강한 살집을
가지고 계셨고 은니를 드러내며 밝게 웃으셨다. 그는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긴 방학의 시작과 끝을 알려준 영원할 것 같던 자연이었다.
 
  요양원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처참했다. 우리 가족은 처음에 할머니를
알아보지도 못 했다. 여러 개의 침대 위에 누워있는 -그냥 놓여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작은 형체들을 두리번거리다가 희미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려고
노력하는 할머니를 찾았다. 그것은 당황 그 자체였는데, 어머니는 이미 흔들렸던
눈빛이
진심이었다는 걸 쏟아지는 눈물로 보여주고 있었고, 우리 가족 모두는 그
생경한 풍경에 알 수 없는 오싹함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난 먼저 한 인간의 육체가

이렇게 급격하게 쇠퇴할 수 있다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내 기억 속의
할머니의 모습 중 그 어느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정신이 멍했다. 그 곳에는
어떤 웃음도 어떤 온기도 어떤 기다림과 어떤 시골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그 곳에는
단지 바싹 건조시킨 까만 버섯 쪼가리같은 한 형체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우리
가족을 알아보고 있기는 했지만, 흐릿한 촛점은 저 멀리 어딘가 과거인지
미래인지
모를 아득한 시간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칼칼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할머니의 모습은, 녹이 잔뜩 슨 고물 기계, 다리가 부러지고 눈이
멀은 비에 젖은 유기견, 그 자체가 커다란 암세포.

  휠체어에 할머니를 태운 우리는 밖으로 나와 뜨거운 햇살을 피해서, 허접하게
꾸며 놓은 요양원 앞 정자 아래로 들어갔다. 딱히 무얼 할 것도 없었지만, 일단
그곳을 빠져나왔다.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하얗고 딱딱한 요양원. 할머니는
옆에 앉아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에게 문득문득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암선고를 받고 그냥 수술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수술을 시키지 않은 자식들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시골집 마당에 무화과가 아주 달게 익었을텐데 하는, 시골
집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걷지 못하니 답답하다는, 잠을 한 숨도 자지 못 해
괴롭다는, 밥을 한 숟갈도 먹지 못 해
힘이 든다는, 이 전에 누리던 일상에 대한 깊은
미련이 있었다. 그리고,


집 냉장고에 장조림이랑 김치랑 해 놓았으니, 서울 올라갈 때 가지고 가서 묵으라.

는 그의 말.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간의 입에서 새어 나온 장조림과 김치라는
생기넘치는 음식의 느낌이 이상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그 음식의  맛과 냄새의
감각이 아련했다. 그 묘한 대비가 낯설었다. 어떤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이 조그만 형체는, 이쑤시개로 올갱이를 하나하나 빼내고 손끝으로 닭발의
뼈를 하나하나 바르고, 투박하고 까만 손끝으로 직접 옥수수알을 모두 발라서 자손의
입으로 넣어주면서 웃던 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가지만 너는 살아라.
그는 남은 인간들의 삶을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당신처럼 늙고 병들고 쪼그라들,
자신 뒤에 남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다시는 자식에게 해주지 못
할 장조림과 김치를 생각하고 있었다.

  할머니 할 말이 있어요. 어릴적 할머니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 저금통에서 돈을
훔쳤어요. 그 500원짜리만 모아 두었던, 할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 놓여있던 저금통
있자나요. 그걸 조금씩 빼서 오락실에 가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었어요. 좀 무섭고
죄송하기는 했지만, 500원짜리 몇 개면 그 날 하루는 즐겁게 놀 수 있었거든요.
저금통 뚜껑을 딸 때마다 영정사진 속 할아버지의 매서운 눈이 무서워 눈을
돌리고는 했지요.

  생각해보면, 할머니가 모르셨을 리가 없다.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 즈음에는 묵직했던
저금통이 가벼워져 있었을텐데. 다음 방학이면 다시 묵직하게 돌아와 있던 저금통이
난 얼마나 반가웠던지. 멍청한 어린 녀석. 사실 부모들은 대부분을 알고 있다.
그들은 모른 척 넘어갈 뿐이다. 그들의 부모가 그랬으니까. 그들의 자식들도 그럴테니까.


나에게 길을 물었던 할매는 이미 떠났는지 벤치에 없다.
나는 그의 여행의 끝이 어디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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